콘텐츠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제목 [4기 우수리뷰] 에티카 - 맹자와 계몽철학자의_대화
도서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 도덕의 기초를 세우다
Jullien, Francois, 1951-, 한울아카데미, 2009
작성자 김진형 작성일 2012.08.24 최종갱신일 2012.08.24
조회수 1476 추천수 0

우리는 과연 동양인인가? 동양인을 정의하는 기준이 혈통이라면 분명 동양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의 측면을 본다면 서양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로는 서양인인가? 분명 서양인에 가까우나 사고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완전한 서양인은 아닐 것이다. 서양식 교육을 받고 서양식 사고를 가지고 있다. 동양의 것보다는 서양의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서양의 것이 대부분이지만 동양의 것 역시 배우고 있다. 어느 정도의 동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감성적인 부분은 동양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우리를 종종 혼란에 빠지게 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종종 내적인 갈등을 겪게 만든다. 그것은 사고와 감성간의 갈등일수도 있고 때로는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의 마찰에서 나오는 것 일수도 있다. 이는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에는 차이가 있다. 서로 다른 사고에서는 생소한 개념들이 각자의 사고에서는 너무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양인이면서도 서양식 교육에 적셔진 한국인에게 있어서 동양과 서양에서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 모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렇게 받아들여진 사고들은 서로 상반되는 특성이 존재했고 이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갈등에 빠트렸다. 이런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자명하게 받아들여온 생각들,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익숙한 개념들과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의 것이 뒤섞인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 과연 이질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서양을 보더라도 어느 정도 익숙한 측면이 있고 동양을 보더라도 익숙한 측면이 있다. 우리의 시도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동양에서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자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서양 사람이 동양에 대해 연구하고 동양을 도구로 삼아 각각이 가지고 있는 습벽을 밝힌 것을 참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프랑수아 줄리앙이 바로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동양을 거울삼아 서양을 비춤으로써 각 문화권이 가진 습벽에 대해 밝혀낸다. 각각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이런 작업은 서양과 동양이 혼재되어 그 비교의 대상을 찾기 어려운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정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도덕의 영역이다. 맹자와 같은 유가에게 있어서 세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지위나, 힘보다 도덕에 우위를 두고 있는 경향이 있었다. 맹자는 물의 비유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은 선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다만 우리는 “물을 쳐서 튀어오르게하면 사람의 이마 높이를 넘어 가게 할 수 있고, 물결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면 산 위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이는 물의 본성이 아니라 외부적 압력인 세의 결과이다. 이렇듯 세라는 용어가 가지는 양면성으로 인해 둘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만 보인다. 그러나 유가에서도 역시 중국의 세가 보여주는 효율성의 개념이 잘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논리에 따라 신하가 군주에게 자연스럽게 복종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세의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의 개입을 통한 대상의 강제보다 대상의 자발적인 경향성에 따르는 것이 더 우월하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유가와 법가는 만나게 된다. 도덕의 경우 ‘불인의 반응’으로 이는 내안에 자리하고 있어 자발적인 경향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다. 결국 본성이라는 “‘주어진 조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즉 자신의 본성에 맞추어 이루어진다.”그리고 여기에 효율성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성인에 의한 도덕적 감화는 사람들을 강제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데 이러한 영향력은 어떤 강제나 저항으로 인한 마찰이 없다는 점에서 세가 가지는 효율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인은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며 이를 농사에 비유를 한다면 화초가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싹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물꼬를 터주고 잡초를 제거해서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화초가 자발적으로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이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에서 효과를 찾은 것과 달리 인위적인 행위는 자연스러운 세계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중국적인 사고에서 세를 타게 되면 결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진행되는 상황이 결과를 함축하게 함으로써 저항 없이 결과에 다다를 수 있다.

 

목록
전체건수 0

- 댓글을 달기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

상단바로가기